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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린이 공연의 허와 실 그리고 부모의 허와 실
작성자 : 브라이어스 등록일시 : 2018-12-19 조회 : 5142
 

10년 전 기억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이 다가오자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딸, 아들과 따뜻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연티켓사이트에서 수많은 공연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어린 자녀가 좋아할만한 공연들이 가득했다. 인기 있는 어린이방송캐릭터, 명작 동화책, 애니메이션 등을 각색해서 만들어진 공연들, 마술 같은 볼거리와 체험 위주의 공연들, 선뜻 선택할 수 없는 고가의 공연들 속에 부모로서 어떤 공연이 아이들을 위한 공연인지 판단하기 힘듦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어떤 것이 어린이를 위한 그리고 가족을 위한 공연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공연은 아닐까? 라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잠시 접고 연말이라는 특별함으로 고가의 공연을 선택했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선택하고 멋스럽고 근사하고 우아함을 느끼고자 아이들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았다. 매진 공연답게 빈자리 없이 객석이 가득 찼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은 객석에 앉자마자 선물샵에서 본 호두까기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곧 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연말선물을 준 것처럼 작은 뿌듯함도 느꼈다. 공연을 관람한지 10분이 흐른 뒤 아들은 공연관람 동안 수차례 내 귀에 “호두까기인형 사줘”라고 속삭였다. 아들은 호두까기인형 생각으로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고 나는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의 속삭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준비한 따뜻하고 특별한 연말선물은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위해 그 공연을 선택했던 것일까?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하는 척하며 나 자신이 부모로서 만족할 공연을 선택했던 것이다. 순간 아이들에게 부끄러웠다. 비싼 공연 관람을 방해한 아들과 비싼 인형을 파는 공연장을 탓했던 나는 그 뒤로 진정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내 눈높이가 아닌 아이들 눈높이에서 공연을 선택하려 노력했다.

 

내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하자 어린이 공연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만들어진 공연과 어른의 눈높이에서 만들어진 공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만들어진 어린이 공연은 정형화 되지 않은 그 공연만이 갖고 있는 색깔과 빛을 발산하며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장면들과 동심을 지키고 가꾸려 노력한 모습들이 공연 안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른의 눈높이에서 만들어진 어린이 공연은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공연에 담았다. 영어와 과학적인 상식을 대사에 담아 사용하고 부모들의 입장을 대변하듯 양치질을 잘해야 된다. 정리정돈을 잘해야 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된다. 등 가르치려는 대사가 많았다.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공연이 아닌 어른 즉, 표를 사는 부모를 위한 어린이 공연인 것 같았다. 어린이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어린이 스스로 개성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어린이 공연 안에 녹아 있으면 좋겠다.

 

어린이 공연을 선택하면서 좌충우돌 관람하며 아쉬움이 남는 공연도 있었고 가슴 벅찬 공연도 있었다. 수많은 공연이 아쉽더라도 가슴 벅찬 한 작품을 만나면 그동안의 아쉬움을 확 날려주고 아이들과 내 마음에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 주었다. 좋은 공연을 만났을 때 공연 관람 중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표정이 매우 풍부해진다. 뿜어져 나올 것 같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표정으로 느낄 수 있고 집에 돌아와 공연의 한 장면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소품을 만들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 좋은 공연이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예술로 만나고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점차 공연티켓사이트 보다는 다양한 경로로 보석 같은 어린이 공연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어떤 공연을 선택해야 될지 몰랐던 나에게 다양한 작품, 극단, 배우들과의 만남은 더 이상 공연티켓사이트 대문에 걸려 진 작품이 아닌 곳곳에서 어린이를 위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땀 흘리며 열과 성을 다하는 극단의 작품들을 찾을 수 있었다. 보석 같은 어린이 공연이 창작되기 까지 극단의 엄청난 철학과 헌신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백 가지 감동으로 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작품을 보면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오감으로 교감하려 노력하는 극단.

 

지역의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갖추어진 무대나 조명 없이 시골학교, 도서관, 공부방으로 문화적 혜택을 받기 힘든 어린이들을 찾아가 공연으로 상상의 세계를 선물하고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극단.

 

오랜 입원으로 지쳐 있는 어린이 환자를 만나러 전국의 병원을 다니며 공연하고 청각장애 어린이도 비장애 어린이와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게 수화와 소리 언어가 함께 있는 공연을 하는 극단.

 

공연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예술을 느끼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어떤 문제와 갈등을 만났을 때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힘이 자라나도록 도와주려는 극단.

 

지구와 서로의 건강한 삶을 위해 자연을 사랑하고 농부가 고된 땀을 흘리며 기르고 수확한 곡식처럼 어린이와 어린이공연이 만나기 위해 농부의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하는 극단.

 

이 극단들은 지금도 그들의 철학을 지키며 어린이의 밝은 세상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공연티켓사이트에서 가족공연을 보면 여전히 10년 전과 비슷하다. 아직도 인기 있는 어린이방송캐릭터, 명작 동화책, 애니메이션 등을 각색해서 만들어진 공연들이 많다. 내가 권하고 싶은 몇 가지 어린이 공연 선택 기준이 있다.

 

1. 공연 정보를 잘 읽고 극단의 다른 작품도 검색해 본다. 그러다 보면 극단에 대한 성향을 알 수 있고 공연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

2. 공연 후기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식상한 말이 아닌 감동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여 진 후 기가 있는지 찾아본다. 그런 후기가 있다면 선택하여도 좋다.

3. 대형 공연과 롱런하는 유명한 어린이 공연 보다는 작은 공연을 주시하자.잘 알고 많이 알려진 작품보다 숨은 좋은 공연을 만났을 때 감동은 극대화 된다.

4.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먼 대극장 보다 거리가 가까운 소극장을 선택하자. 어린이들은 어른 보다 공간을 더 크게 느낀다. 넓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어른이 되어 보면 작아진 것처럼 어린이 공연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5. 1~4에 쓰여 진 대로 했는데 그래도 잘 모를 때는 어린이연극축제(예. 아시테지)를 검색하고 축제기간 공연을 선택한다. 어린이전용극장(예. 아이들극장)에서 선정한 공연을 선택한다.

6. 천천히 꾸준하게 좋은 공연과 어린이에 대한 좋은 정보를 함께 나누고 싶다면 어린이와 관련된 단체(예. 어린이문화연대,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을 하고 어린이잡지(예. 개똥이네 놀이터) 구독을 한다.

 

내가 어린이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을 위함 이었지만 좋은 극단이 만든 좋은 공연 안에서 철학, 환경, 인권 등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느끼며 삶이 풍요로워졌다. 특히,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느낌, 잘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심장의 움직임. 그것은 공연이 주는 감동의 힘이었다. 그 경험은 나의 일상을 한 동안 행복하게 해주고 미소 짓게 해주었다. 어린이 공연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동심을 잃지 않고 지켜주는 등불이 되어 아이들과 어른을 함께 성장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10년 전 나처럼 어떤 공연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소신 있게 극단의 철학을 지켜오며 어린이 공연을 위해 애쓰는 극단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인터뷰어 주희영
  • interviewer 주희영

    어린이어깨동무와 피스모모에서 평화교육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대골마을학교에서 3년간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연극놀이를 하며 놀았다. 어린이문화연대 소모임 ‘개구쟁이’에서 어린이 청소년 연극 읽는 활동을 했고 어린이책시민연대에서 책모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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