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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또 다시 아동극의 중흥을 꿈꾸며... - 김성제
작성자 : 브라이어스 등록일시 : 2017-09-15 조회 : 6693
 

여름 방학이 끝났다. 초등학교의 방학 기간이 예전보다 짧아진 느낌이다. 짧아진 방학 기간으로 마땅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을 때, 어린이와 함께 공연 한 편을 보는 것도 꽤 괜찮은 계획이다. 올 여름 방학은 다양한 어린이 공연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했다. 매년 해외 우수 아동청소년극을 소개하는 아시테지 국제 여름축제가 ‘호기심으로 무대를!’이란 주제로 지난 7월 19일부터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졌고 예술의 전당에서는 여름방학 시즌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연극 시리즈’로 3편의 아동극을 어린이들에게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은 어린이가 공연예술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개최하였으며, 국립극단은 8월 말 독립예술가들의 1인극 공연 축제인 ‘한여름 밤의 작은 극장’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도 함께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준비해 뜨거운 여름밤을 수놓았다. 이 밖에도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들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공연들의 특징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게 국내부터 해외 우수 작품까지 4세부터 14세 이상 각 연령에 맞는 내용과 주제로 특색 있게 꾸며졌다.

. <사진 1> 국립극단 한 여름밤의 작은극장 ©우현용. 2017

한 때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어린이 공연물이 이제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의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동화부터, 소녀들의 성에 대한 문제, 인형과 영상, 오브제를 활용한 연극까지 내용과 형식도 다양해졌다. 아동극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까닭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소득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어린이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아동극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그전만 못하지만 한 때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서울 대학로를 비롯해 주변의 극장은 어린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당시에도 대학로는 평소 성인극이 주로 공연되는 장소였지만 5월 5일 하루는 어린이들에게 극장을 양보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아동극은 대학로 중심의 소극장 같은 경우, 많으면 하루에 6회를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관객을 다 소화하지 못해 좁은 소극장 무대 반을 돗자리 같은 것을 깔아서 어린이들을 앉히고 공연하기도 했다. 여름과 겨울 방학 때에도 어린이 관객들이 아동극을 많이 찾았다. 지금처럼 인터넷 홍보가 발달하지 않아서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나눠줘야 했지만 방학만 되면 극장들은 어린이들로 가득 찼다. 유명 극장이나 지역사회의 문화회관 구민회관 등은 5월이나 여름 겨울 방학기간에 특별히 아동극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거나 대관을 비워두었는데, 아마 이때를 기점으로 서울과 몇 몇 대도시에 사람의 왕래가 많거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어린이 전용 극장이 들어섰을 것이다. 백화점의 문화센터나 대형마트 등도 매장의 한 층을 어린이를 위한 공간과 아동극을 위한 공연장을 만들었는데, 주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경우 상가의 한 곳을 임대해서 운영되는 어린이 전용 소극장도 꽤 있었다.

. <사진 2> 대학로 샘터 파랑새 극장 ©https://lifecapsule.wordpress.com/2009/12/06/daehak-ro/

이전 보다 아동극에 대한 어린이와 부모님의 열기가 많이 식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 아동극은 여전히 어린이들의 문화 활동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린이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면서 연극을 전공하거나 타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아동극에 대한 관심도 늘어가 장르도 다양해졌고 새로운 실험과 형식에 도전하는 공연도 많아졌다. 이렇게 예술 전반에 걸친 어린이 공연에 대한 관심으로 아동극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업적인 목적만 앞세우는 아동극이 여전히 많다.

 

2017년 8월 31일 기준으로 한 유명 예매 사이트의 현황을 보니 만화영화나 해외 유명 명작 동화를 뮤지컬형식으로 소개한 공연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각색해서 인기를 끈 디즈니 만화영화는 유사한 이미지를 띄우고 제목만을 바꿔 여러 극단들이 공연을 올리고 있었다. 아동극은 어린이의 예술적, 교육적, 정서적 가치를 고려해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는 경험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인기에 영합하여 상업적 목적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해외 명작 동화나 만화영화를 각색한 작품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글로 읽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인물이 현실에 등장하는 기쁨을 필자도 어렸을 때 느껴보았다. 연극놀이 전문가인 위니프레드 워드(Winifred Ward)는 잘 쓰여진 문학 작품을 무대에서 만난다는 것은 어린이에게 상상의 지평을 넓혀주고 이해를 깊게 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나라의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린이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우리의 정서가 담기고 현재의 우리의 삶과 어린이의 관점이 가득 담긴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 <사진 3> 무지개섬 이야기 ©극단 성시어터라인. 2016

<스웨덴 왕립 어린이청소년극단 웅아 드라마텐> 제작자 ‘펠리시아 모리츠 말픔크루나아’는 어린이 대상의 연극은 재미와 교육적 효과뿐만 아니라 어린이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을 통해 삶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어린이 관객을 위한 작업에서 거식증, 다운증후군, 이혼과 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 연출가 ‘수잔 오스틴’은 “아동극은 재미와 교육적 효과뿐만 아니라 어린이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을 통해 삶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하며 어린이에게 삶이 복잡하다는 것을 진실 되게 말할 수 있어야 어린이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우리나라 아동극에서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냉정하게 그리기를 주저하는 것은 아동극 제작과 관련한 관계자들이 어린이의 삶을 진지하게 살펴보려 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많은 관계자들이 환상의 세계를 무대에 펼쳐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와 못지않게 판타지가 아닌 현재의 삶에서 어린이들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지금 당면한 문제와 과제 앞에서 행동하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아동극 제작자들이 아동극은 언제나 즐겁고 밝고 명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고 재미있는 연극을 보면 관객들도 신나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성인극의 경우 모두 그러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코미디만 공연하지 않는다. 성인이 비극을 보고 연민을 느끼고 운명의 공포 속에서 마음이 정화되고 위로를 받듯이 어린이들 역시 성인과 다르지 않게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무겁거나 민감한 소재를 다루거나 보기 불편한 것을 어린이에게 보여주면, 어린이의 정서에 해가 되기 때문에 관객이 외면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지난 5월 종로아이들 소극장에서 공연된 어둡고 슬픈 이야기 한 편이 이를 증명한다.

. <사진 4> 엄마이야기 ©종로아이들극장. 2017

지난 5월 <종로 아이들극장> ‘죽음’을 소재로 한 진지한 어린이 연극 한 편이 올랐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각색한 한태숙 연출, 박정자 주연의 “엄마이야기‘가 그것이다. 해외 동화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윤색을 했고 기존의 아동극과 달리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아동극은 신나고 즐거워야 관객이 찾는 다는 세간의 우려를 깨고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환영 받은 작품이 되었다.

 

“엄마이야기”에서 특별한 것은 기존의 아동극에서 금기처럼 여겨졌던 죽음을 어린이 관객 앞에 당당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어쩌면 성인에게도 불편한 것일 지도 모른다. 아동극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정면에 내세우지 않고 금기시하거나 회피하는 이유는 어린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성인에게 작용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성인들로 하여금 슬프고 우울한 죽음이라는 것에서 되도록 어린이를 떨어뜨려 놔야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떨어뜨리려 애를 써도 떨어뜨릴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성인의 삶에서처럼 어린이의 삶에도 항상 존재하는 것이 죽음이다. 어린이의 삶에 없는 것이 어른의 삶에 있을까? 그런 것은 있을 리 없다. 다만,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것이 성인의 눈으로 보는 것과 다름이 있을 뿐이다. 어린이의 세상에서 ‘죽음’을 제거하지 않고 어린이 스스로 ‘죽음’을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 <종로 아이들극장> 의 용기다.

. <사진 5> The Festival / Asso ©http://www.festival-marionnette.com/en/programmation-eng/the-festival-the-asso

아동극의 중요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관객의 눈높이가 한층 높아졌다, 이로 인해 어린이의 진솔한 마음과 고민 그리고 어린이의 삶을 담은 아동극을 선보이고자 하는 열망이 소수의 아동극 관계자와 창작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오로지 아동극을 상업적 목적만을 위해 무대에 올리는 단체들이 많다. 한 때,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1년 내내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아동극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와 전단, 그리고 현수막이 나부끼는 때가 있었다.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면도 많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행복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요즈음 그러한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아동극 축제를 통해 다양한 장르와 재미있는 형식을 갖춘 수준급 공연을 소개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동극 시장이 조금 위축되어 보인다.

 

과거 5월 어느 날 어린이들로 북적이던 대학로 거리를 상상해 본다. 그 당시 어린이들은 항상 읽던 책 속의 주인공들과 실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극장에 앞 다투어 달려왔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어린이들은 누구와 어떤 이야기 나누고 무엇을 그토록 보고 싶어 할까? 어쩌면, 요즘 어린이들은 옆 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매일 왜 그렇게 싸우는지, 어째서 내 짝꿍은 등에 자주 멍이 드는지,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만나게 되는 외국의 모습을 보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전쟁으로 배고픔으로 죽어 가는지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어느 화창한 날, 어린이들이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것, 어린이에게서 어른들이 멀리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자 5월과 방학, 아니, 1년 내내 우리는 어디서든 공연 시간에 맞춰 극장을 향해 달려가는 부모와 어린이들이 보인다. 상상하니, 정말 기분이 좋다.

  • 김성제
  • 김성제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소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아동청소년극 전공 수료
    신춘문예 희곡 당선(한국일보2013)
    <주요 작/ 수상내역>
      - 무지개섬 이야기 2016(연출)
      - 여우야 뭐하니? 동산에 꽃피면 나하고 놀자2001 (작/연출 서울어린이연극상 극본상, 최고인기상)
      - 춤추는 강아지 1997 (작/연출/음악. 서울어린이연극상 최고인기상)
      - 달빛왕자 두또르 1997 (작/연출/음악, 서울어린이연극상 음악상)
      - 이상한 나라의 두찌1995 (작/연출, 서울어린이연극상 극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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